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새미 소사 (문단 편집) === 전성기 === 1998년은 그야말로 새미 소사의 해이자 그의 '''최전성기의 시작'''. [[로저 매리스]]의 단일 시즌 61홈런 기록을 놓고 소사는 [[마크 맥과이어]]와 함께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세기의 홈런 레이스를 벌이게 된다. 시즌 초반에는 맥과이어의 독주 체제였지만 소사가 6월에만 월간 신기록인 20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맥과이어를 맹추격했고, 이 둘의 경쟁은 파업으로 시들해진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회복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전년도에 58홈런을 기록하며 아쉽게 홈런 신기록 도전에 실패했지만, 다음해에도 역사적인 역대 한시즌 최다홈런 61개를 뛰어 넘을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던 맥과이어는, 시즌초부터 역대 최고의 페이스로 홈런을 쉴새없이 날려대며 독주를 시작, 팬들의 관심과 기대를 증폭 시켰다. 여기에 더해 소사가 5월 말부터 홈런 페이스를 엄청나게 끌어올리더니 6월의 대폭발을 통해 당당히 도전자로 등장함에 따라, 1998년의 홈런왕 레이스는 누구도 승자를 장담하기 어려운 혼전 양상이 되었고, 두 사람이 날려대는 사상 초유의 홈런 페이스로 숨막히는 경쟁 구도를 만들어갔다. 맥과이어가 한발 앞서가면 기다렸다는 듯 1~2개 차이로 따라붙는 소사 덕분에, 유례없이 치열한 경쟁은 화제거리가 되어 연일 매스미디어에 대서특필 되었고, 야구에 관심없는 사람들까지도 TV와 경기장으로 구름처럼 몰려들게 만들곤 했다. 특히 로저 매리스의 61홈런 경신을 앞둔 시점에서는 그야말로 전 세계의 모든 스포츠 매체가 그들의 홈런 소식으로 도배되었으며, 세인트루이스와 시카고의 경기는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았고, 역사적인 순간을 보기 위해서, 혹은 경매에서 일확 천금을 기대하고 홈런볼을 잡기 위해서, 몰려든 구름 관중이 경기장 안과 밖을 물 샐 틈없이 채우곤 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사건이 된 62홈런을 기록하는 순간,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와 영광은 맥과이어의 것이었지만, 외야에서 뛰어와 라이벌 맥과이어를 끌어안고 격려하며 진심으로 기뻐해주던 소사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승자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 시즌 종료 후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홈런왕 타이틀은 70개를 기록한 맥과이어를 영광의 주인공으로 맞이 했다. 비록 새미 소사는 66홈런으로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홈런 2위가 되었지만, 이해 158타점으로 리그 1위를 기록했으며,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큰 공을 세운 점을 인정받아 내셔널리그 MVP를 차지하게 된다.[* 홈런 레이스가 벌어지는 기간 내내 미디어의 초점은 세인트루이스와 시카고 두 팀에 경기에 집중 되고 시청률은 월드시리즈를 월등히 넘어설 정도였다. 특히 60홈런에 도달했던 시점부터는 그야말로 전 세계의 이목이 이들에게 쏠려 한국도 스포츠 신문들의 1면마다 58,59, 60 숫자가 도배되곤 했다. 심지어 맥과이어의 62홈런 기록은 스포츠 뉴스가 아닌 KBS, MBC 9시 뉴스에 5분 가까이 할애될 정도로 화제가 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가장 빛내준 것은 로저 매리스의 유족도, 맥과이어의 아들도 아니었고, 홈런이 살짝 넘어가는 순간 외야에서 전력 질주로 달려와 맥과이어를 부둥켜안고 자기 일처럼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던 소사의 몫이었다. 방송과 언론에서는 연일 새미 소사의 아름다운 격려와 승자를 배려하는 멋진 라이벌 관계에 대한 찬사를 보냈으며, 이러한 대중의 호감과 위대했던 2위에 대한 아쉬움과 연민, 팀의 포스트시즌 공로를 더해, 소사는 MVP 투표에서 홈런왕 맥과이어를 큰 차이로 제치고 수상하게 되었다.] 또한 빈민과 어린이를 위한 재단을 만들어 고국인 도미니카 공화국의 학교와 병원을 지원하는 등 활발한 자선 활동도 펼치면서 그해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도 수상했다. 비록 가장 큰 영광의 순간은 맥과이어에게 돌아갔지만, 1998년의 새미 소사는 그야말로 전국구를 넘어 세계적인 스타로 각광받게 되었고, 인품, 실력, 겸손함에 더해 홈런왕 경쟁에서 승리한 라이벌을 축하하는 품격과 미덕까지 갖춰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메이저리그의 아이콘 중 하나가 되었다. 1999년에도 데쟈뷰처럼 맥과이어와 치열한 홈런 레이스를 이어가며 아직 전년도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고, 이번에도 아쉽게 홈런왕은 맥과이어에게 넘겨 주었지만, 0.288 63홈런 141타점의 무시무시한 성적을 기록하고 그 해 제정된 [[행크 아론 상]]의 초대 수상자가 된다. 2000년에는 0.320 50홈런 138타점을 기록하며 생애 첫 홈런왕의 영예를 안았고, 세이버매트릭스 상으로는 진짜 커리어하이였던 2001년에는 0.328, 64홈런 160타점으로 단일시즌 60홈런 이상을 세 차례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사는 역대 60홈런을 가장 많이 기록한(3회)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60홈런을 넘긴 3차례 시즌 모두 홈런 2위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시즌 후 컵스와 4년 7,2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맺었고, 2002년에는 0.288 49홈런 103타점으로 두 번째 홈런왕을 차지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소사는 매년 올스타전 출전과 더불어 [[실버슬러거]]를 수상했다. 여기까지가 그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5년동안 기록한 홈런의 개수는 292개로 5년간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낸 기록으로 남아있다. 5년간 연평균 58홈런이라는 성적은, 라이벌 맥과이어도, 위대한 [[베이브 루스]]도, 당시 수퍼스타에서 야구의 신이 되어버린 [[배리 본즈]]도 다가갈 수 없는 괴물 같은 기록이었다. 물론 본즈는 고의사구만 아니었으면 당연히 넘겼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2001~2004년 전부 볼넷을 제외한 타석당 홈런 개수는 본즈가 1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